작성자 | 이세라 | ||
조회수 | 993 | ||
작성일 | 2016-01-24 12:59:31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태복음 26:36-46)
영적 위인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성 바실(St. Basi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고 찬송가와 더불어 아가서를 묵상하며 조물주를 찬양하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리고 마지막 태양이 떠오르게 되면 기도와 찬송을 부르며 노동에 전념하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매일 새벽 두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는다면 그 날의 승리는 마귀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며, 또한 직접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유용한가를 말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무릎을 꿇었을 때 가장 높은 경지의 위대함이 나타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영적 위인들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기도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기도에 관해 다룰 내용이 많이 있지만 오늘 저는 좀 더 실제적인 가르침에 집중하기 위해 본문을 근거로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가? 둘째,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먼저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시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끝내고 와 보니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당부는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시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앞두고 시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피하고 싶은 욕구와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류구원의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하자 십자가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구원을 찾으라는 유혹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에게는 어떤 시험이 있을까요?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시험을 만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하려는 그 시험에 빠져 버렸습니다. 왜 베드로가 시험에 빠졌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깨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지만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4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들은 순종하기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연약하고 제한된 존재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는 베드로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는 정말로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이 닥치자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베드로가 이중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의 육신이 너무 약해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시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시험을 이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첫 번째 이유는 시험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힘으로는 그 시험을 이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셔야 합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고 시험을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어떻게 기도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자,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로, 평소에 일상의 삶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누가복음 22:39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는 말은 예수님에게는 기도하시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기도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관찰해 보면 예수님은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일정하게 기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감람산도 그런 장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은 정기적으로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평소에 늘 기도하시던 장소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로 이른 새벽, 혹은 늦은 밤에 기도하셨습니다. 낮에는 여러 사역 때문에 기도할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나 밤에 기도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려면 일정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물론 기도하는 장소를 특정한 곳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제한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무시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의 습관을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과 장소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삶이 워낙 분주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떼어 놓지 않으면 기도할 틈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기도하라는 단어는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지속적인 동작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기도하라는 말은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도 사실은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는 이유가 매일 생깁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 기도를 삶의 우선순위로 삼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는 이유는 매일 수도 없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도생활을 하려면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곧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십자가 없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기도를 잘 보면 첫 번째 기도와 두 번째 기도가 약간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소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두 번째 기도에서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뜻을 온전히 내려놓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보다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십니다. 첫 번째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기도는 그 과정에서 기도하는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온전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묵상과 기도는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지금은 계시가 완성된 시대입니다. 신구약성경은 온전히 완성된 계시입니다. 우리는 신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도를 드리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기도하기를 주저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몰라도 기도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그 기도의 과정이 단지 내 주장을 일방적으로 쏟아내어 관철시키는 것이 되면 안 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분별력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처럼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도를 드리려면 반드시 말씀묵상과 기도를 병행하셔야 합니다.
셋째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세 번이나 동일한 제목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했다는 것은 끈질기게 끝까지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동일한 기도를 세 번이나 반복하셨심으로 간절한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땀을 흘리며 기도해 본 적은 있지만 그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때까지 기도해 본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처럼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간절하게 기도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어려웠던 시절에는 내 인생을 걸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제 형편이 나아지니 더 이상 그런 간절한 기도는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나 형편이 좋을 때는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유혹의 방법이 다를 뿐 마귀는 항상 우리를 삼키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지금 여러분은 간절함이 없이 그저 냉랭한 기도만 형식적으로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냉랭한 기도는 화살촉이 달려 있지 않은 화살, 칼날이 붙여져 있지 않은 칼, 날개 없는 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과녁을 꿰뚫을 수도 없고, 조금도 벨 수 없으며, 또한 절대로 하늘에 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실까요? 사실 간절히 기도하기 전에 응답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실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꼭 이렇게 진을 다 뺄 정도로 기도해야 들어주실 것 뭐 있습니까? 그저 가볍게 기도할 때도 들어주시면 좋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가벼운 기도에도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아니 때로는 우리가 생각만 했는데도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완전히 진을 다 뺄 때까지 기다렸다가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원하실까요?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처음에 기도할 때는 사실 내 힘을 의지하는 마음도 약간 있습니다. 환경을 의지하는 마음도 약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르면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환경도 내 편이 아닙니다. 그 순간이 되면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 의지할 대상을 다 내려놓고 간절하게 매달려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 끝에 응답되면 비로소 그 응답이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이 변화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시고 방패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 놀라운 변화가 내 삶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를 통해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우리 삶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응답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간혹 성도들 가운데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언제까지 기도해야 할까요?” 그 때마다 저는 동일한 답변을 드립니다.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 기도했다는 말은 간절히 기도했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예수님은 같은 기도를 반복하셨을까요? 너무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도하신 것일까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응답받으실 때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응답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45절을 보십시오.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개역개정판은 전반부를 “자고 쉬라”는 명령형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번역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본문은 자고 쉬라는 명령형보다는 “여전히 자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전히 자고 있느냐고 질문하시면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어떻게 확신하게 되었습니까? 기도 가운데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지만 기도 가운데 예수님은 이 잔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내가 기도한대로 응답될 수도 있고, 내가 기도한 것과 다르게 응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처음 기도한대로 응답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응답입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하셔야 합니다. 내가 기도한대로 이루어진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시면 됩니다. 만약 내 기도가 잘못되었다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라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어도 기도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너무 오랫동안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조금만 더 기도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응답하실 때가지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시험을 만납니다. 게다가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을 이기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나는 저렇게 넘어질 사람이 아니라고 과신하지 마십시오. 대체로 장담하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장담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절대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막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나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시험을 앞두고 죽을 만큼 고민하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거의 밤을 새우며 흐르는 땀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시험을 이기기 위해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시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매일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깨어 기도하여 주님의 은혜로 능히 시험을 이길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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