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박경진 | ||
조회수 | 1233 | ||
작성일 | 2016-07-10 13:05:02 |
요시야의 종교개혁 |
요시야의 종교개혁(역대하 34:1-7; 29-33)
서론 - 요시야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타락한 유다를 가장 탁월하게 개혁한 요시야 왕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지난 후 이스라엘은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 분열왕국시대를 지내다가 북이스라엘은 주전 721년에 아시리아에게 먼저 멸망을 당했습니다. 요시야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만 남았던 시절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아버지 아몬 왕이 반역한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다시 백성들이 그 반역한 신하들을 죽이는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불과 8세라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랐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는 국제정세가 크게 변화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중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시리아는 형제들끼리의 권력다툼으로 그 세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신흥제국 바벨로니아가 서서히 중동지역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예언자 나훔과 하박국은 아시리아의 멸망을 예언했고, 예레미야는 바벨로니아에 의해 닥치게 될 조국의 위기를 예언하였습니다. 결국 기원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가 신흥제국 바벨로니아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습니다.
국제정세가 그렇게 급변하고 있던 시기에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8세에 왕이 된 요시야는 8년이 지난 16세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아마 처음에는 워낙 나이가 어려서 제대로 상황파악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16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나 20세가 되었을 때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는 일에 착수하여 우상숭배를 제거하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그 후 요시야는 26세까지 종교개혁을 마치고 여호와의 전을 대대적으로 수리합니다. 한편 아시리아가 내부 사정으로 약해진 틈을 타서 빼앗겼던 북이스라엘 지역을 점령하고 그 지역까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본론 – 어떻게 요시야는 타락한 유다를 개혁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요시야는 타락한 유다를 온전히 개혁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저는 요시야 왕의 개혁을 통해 과연 우리는 우리 시대를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유산을 물려받은 개혁교회들의 모토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우리는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살펴보고 그 원리를 우리 삶에 적용하여 우리 시대를 새롭게 개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뜻을 세운 후 단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유다의 개혁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요시야의 생애를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었고, 16세에 하나님을 찾았으며, 20세에 종교개혁을 단행하였고, 26세에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 물론 요시야의 생애는 그 후에도 이어지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요시야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여도 8세라는 나이는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다. 아마도 그 때부터 8년 동안은 누군가 대리로 나라를 다스렸을 것이고, 요시야는 명목상의 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16세에 하나님을 찾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아마 그 때부터는 자신이 직접 나라를 통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 때 바로 종교개혁을 단행하지 않고 4년을 기다립니다. 왜 요시야는 하나님을 찾고 바로 종교개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종교개혁을 위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혁에는 항상 저항하는 반대세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4년 간 준비하여 개혁에 성공합니다. 요시야는 20세에 종교개혁을 시작하여 26세에 종교개혁을 마무리합니다.
그 시기에 관한 기록은 본문 1-7절에 나옵니다. 그 중에서 3-7절까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 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4.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5.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6.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7.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는 우상들의 산당과 여러 다양한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립니다. 백성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바알의 제단을 헐어 버렸습니다. 또한 요시야 왕은 직접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어버리고 아세라 목상들과 여러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사람들의 무덤에 뿌립니다. 또한 그 우상을 섬긴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합니다. 예루살렘에서만 이런 개혁을 단행한 것이 아닙니다. 요시야 왕은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 지파에 속한 성읍들에서도 동일하게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 곳에서도 제단을 허물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들을 찍어 버립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 곧 26세에 요시야는 모든 종교개혁을 완성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요시야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요시야는 아직 어린 나이인 16세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한결같이 온 나라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회복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16세에 뜻을 세워 4년간 충실하게 준비하고, 20세부터 개혁에 착수하여 흔들림 없이 개혁을 수행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어릴 때 하나님께 헌신하고, 변함없이 일관된 태도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시야에게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사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살피고 방황하다 보면 어느 덧 인생의 황혼에 이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일찍 헌신하고 평생을 일관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요시야같이 일찍 뜻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대부분 이미 젊은 시절을 지낸 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세월의 허물을 물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바르게 살면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나이가 드신 분들은 지나간 과거 때문에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분들에게는 므낫세같은 왕도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 므낫세는 젊을 때 타락했다가 나중에 돌이켜서 하나님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사실 감사한 일입니다. 끝까지 타락의 길을 걷다가 멸망한 것에 비한다면 늦게라도 돌이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에 헌신하고 일평생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자녀들을 바른 신앙으로 기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의 인생의 푯대를 정하게 하고, 일생 동안 그 길에서 일관된 모습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정말로 찾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 가운데는 젊을 때 헌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더우드, 허드슨 테일러와 같은 선교사들, 칼빈과 같은 신학자들, 윌리엄 윌버포스와 같은 정치가들이 모두 20대에 헌신하여 일평생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어릴 때 헌신하고 평생 한결같은 모습으로 신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이 자리에 있는 청년들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방황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젊을 때 하나님 안에서 뜻을 정하고 평생 그 길에서 사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라는 말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런 거창한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부르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순종하십시오. 우리는 누구나 다 부르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렇게 거창한 부르심이 없다고 해도 전혀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인생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일찍 뜻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곳을 우리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나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다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그 일로 부르심을 받은 소수가 감당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분야에서 살아가든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부르심 받은 그 곳에서 바른 뜻을 정하고 일평생 흔들림 없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과학에 재능이 있다면 과학자가 되어서 여러분이 속한 과학계를 개혁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의학에 재능이 있다면 의사가 되어 의료계를 개혁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사업에 재능이 있다면 비즈니스계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 보십시오. 여러분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있다면 교육자가 되어 교육계를 개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느 길로 부르심을 받을지 그것은 제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부르심은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어떤 역할로 부름 받든지 여러분이 부름 받은 그 일에 젊은 날부터 헌신하십시오. 일찍 뜻을 정하고 평생 한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어린 시절에 헌신하고 일평생 한결같이 신실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어른들께서는 여러분의 자녀들을 요시야처럼 시대를 개혁하는 인물로 기르기 위해 기도하며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절실하게 이런 개혁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를 새롭게 하여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줄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을 그런 인재로 기르십시오. 너무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모두가 왕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을 부르신 자리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한 나라를 개혁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한 회사를 개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감당하면 됩니다. 다만 가능한 한 일찍 하나님 안에서 뜻을 정하시고, 한 눈 팔지 말고 그 길에서 끝까지 신실한 삶을 살아서 여러분이 속한 곳을 새롭게 개혁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요시야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요시야는 20세부터 26세까지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성전을 수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본문 8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요시야는 성전을 수리하려고 사반과 요아를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수리하던 중에 대제사장 힐기야는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힐기야는 그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그 율법 책을 들고 가서 요시야 왕 앞에서 읽었습니다.
15-19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15.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16.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여 이르되 왕께서 종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종들이 다 준행하였나이다 17.또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돈을 쏟아서 감독자들과 일꾼들에게 주었나이다 하고 18.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19.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요시야는 그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자기 옷을 찢습니다. 옷을 찢는 것은 회개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때 요시야가 들었던 말씀은 신명기에 있는 심판에 관한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요시야가 이토록 비통한 마음으로 회개한 것은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요시야는 신명기에 있는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요시야 왕은 곧 그 율법 책을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내어 감정과 해석을 부탁합니다. 훌다는 하나님의 진노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지만 옷을 찢으며 회개한 요시야는 평안히 묘실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이제 요시야는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과 노소를 막론한 모든 백성들을 다 불러 모으고 그 율법 책을 읽어줍니다. 그리고 언약을 새롭게 갱신합니다. 본문 31-3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31.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32.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요시야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겠다고 하면서 언약을 갱신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3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런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언약갱신으로 말미암아 그가 사는 날 동안에는 백성들이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타락한 나라를 개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외부적으로는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막아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개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요시야는 이 두 가지 일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요시야는 전혀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어떻게 요시야는 이렇게 개혁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한 요시야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서기관 사반이 읽어준 말씀은 아마도 불순종하면 심판하겠다는 경고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요시야는 그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 옷을 찢으며 회개합니다. 신명기에는 축복에 대한 약속의 말씀과 불순종에 대한 저주의 말씀이 함께 나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씀만 듣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축복의 말씀은 좋아하지만 저주하겠다는 경고의 말씀은 외면합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2:18-19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그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말씀에서 더한다는 말은 성경에 기록된 축복에 무엇인가를 더한다는 말이고, 제하여 버린다는 말씀은 성경이 경고한 심판에서 무엇인가를 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을 더할 것이고, 말씀에서 무엇인가를 제하여 버리는 자들은 구원에서 제하여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축복에 무엇인가를 더하고 심판에서 무엇인가를 빼버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바른 자세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축복에 대한 약속과 함께 저주에 대한 경고도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약속을 붙잡고 누리십시오. 동시에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을 함부로 약화시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장차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며 회개했습니다. 조상들의 잘못을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회개했습니다. 백성들의 잘못이 마치 자기 잘못인 것처럼 회개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을 들으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 겸손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회개를 촉구하면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을 여러분의 입맛대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향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멸망을 경고하는 말씀을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여러분의 전용 거울로 삼으십시오. 매일 말씀에 여러분 자신을 비추어 보십시오. 축복의 말씀을 주시면 감사하면서 누리시고, 경고의 말씀을 주시면 통회하는 심령으로 회개하십시오. 그것이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 곧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렇게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소에 말씀을 붙잡으면 위기상황에서 그 말씀이 우리를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목회초기에는 한국교회를 개혁하겠다고 하여 젊은 목회자들의 존경을 받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말년에는 완전히 변질되어서 오히려 한국교회를 타락시키는 데 앞장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았는데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젊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지성이나 탁월한 선동능력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체로 그런 분들은 말년에 변질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한결같이 말씀 앞에 겸손하셨던 분들은 시작과 끝이 동일합니다. 한결같이 신실하게 사역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목회자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개혁은 오직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개혁도 말씀으로 해야 하고, 사회개혁도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경을 읽다가 확신에 사로잡혀 “오직 성경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노예해방 운동에 앞장섰던 미국의 링컨이나 영국의 윌버포스는 종교개혁자가 아니라 사회개혁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분들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날마다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열고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럴 때 끝까지 변질되지 않고 우리에게 맡겨진 개혁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일찍 뜻을 세우고, 올곧게 그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하려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셔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주시면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경고의 말씀을 주시면 자신에게 주신 경고로 알고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끝까지 말씀 앞에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여러분을 부르신 그 소명의 자리에서 끝까지 신실하게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선한 뜻을 품고, 말씀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여 일평생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개혁의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