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박경진 | ||
조회수 | 1016 | ||
작성일 | 2017-10-08 12:53:13 |
예수를 따르라 |
예수를 따르라(마태복음 4:18-22)
어느덧 올해도 사분의 삼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2017년도 3개월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싱크와이즈 커리큘럼은 매년 마지막 3개월 동안 사복음서를 본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연말에 더욱 예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도 역시 10월부터 12월까지는 사복음서를 본문으로 삼아 설교할 예정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좀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낚시를 마치고 그물을 깁고 있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동일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부르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면과 예수님의 말씀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교회에 오래 다닌 분들이라면 아마 이 내용을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으로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 것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곧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크게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은 즉각 순종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 말씀만 보면 마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대단히 즉흥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두루 살펴보면 제자들이 그렇게 즉흥적으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데도 다 거쳐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갑자기 따라간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오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때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이 아닙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을 살펴보면 이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안지 약 1년 정도가 경과했을 때입니다.
먼저 요한복음 1:35-42을 같이 보겠습니다.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이 말씀을 보면 두 제자는 본래 침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승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보고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었고, 그 제자들은 어디에 계시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와서 보라고 하셨고, 두 제자는 그 날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지냈습니다. 침례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안드레였습니다. 그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 형 시몬을 예수님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에게 게바, 곧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은 분명히 안드레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제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익명으로 처리된 제자는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으로 추정됩니다. 요한은 자신이 등장할 때마다 익명으로 처리하곤 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 사람의 제자들은 그 기간 동안 예수님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지내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하여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까지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제자들은 여전히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고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여 공식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분에게 내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제자가 되는 순간 내 삶을 전반적으로 다 조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즉흥적으로 결정하면 안 됩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누가복음 14:25-33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5.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한 가지는 망대를 준공하려는 사람의 비유이고, 또 한 가지는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은 예산이 충분한지 검토한 후에 공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한 후 다 끝내지 못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임금은 일만의 군사를 데리고 이만의 군사를 거느린 적군을 이길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깊이 생각해보고 결단이 서면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것인지 진지하게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결단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결단했을까요? 먼저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부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가복음 19:27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물론 여기서 모든 것을 버렸다는 말을 문자적으로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 때 그물을 버렸지만 집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과 아내와 장모가 살고 있는 집을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위한 전초기지로 내어놓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버렸다는 베드로의 말은 실제로 버렸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것을 주님을 위해 내어 드렸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9:19-21을 같이 보겠습니다. “19.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진 것은 자신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가족에게 작별인사 할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엘리야에게 허락을 받은 후 엘리사는 소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서 백성들에게 주어 먹게 한 후에 엘리야를 따릅니다. 소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사른 것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을 모두 버린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물을 버린 것처럼 엘리사는 소의 기구를 불사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한다는 것은 내가 이전에 의지하던 것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엘리사가 소의 기구를 불살라 버리고 스승 엘리야를 따른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물을 버렸습니다. 더 이상 그물을 의지하고 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 동안은 그물을 의지하여 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물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하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기를 의지하고 살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더 이상 내가 가진 지식이나 내가 가진 소유 등을 의지하고 살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 동사는 바로 따른다는 동사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내 뒤를 따라 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곧 예수님을 따릅니다. 20절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도 곧 예수님을 따랐고, 22절에서 야고보와 요한도 곧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20절과 22절에서 따랐다는 동사는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할 때와는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내 뒤를 따라오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기꺼이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따른다”는 단어에는 고대인들이 제자를 가르치는 방식이 잘 담겨 있습니다. 어느 스승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스승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제자라는 단어는 고대 사회에서 사용된 의미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합니까? 대학교수는 자신에게 몇 과목 수업을 들었으면 자기 제자라고 합니다. 저명한 대학자에게 수업을 들으면 밖에 나가서 자신이 아무개 교수의 제자라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현대 교육은 대부분 지식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제자라는 말은 그 스승에게 배웠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고대 세계의 교육은 현대의 교육과 많이 달랐습니다. 고대 세계의 교육은 대부분 도제식 교육이었습니다. 성경도 그런 고대 사회의 배경 아래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곧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의 삶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 곧 모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스승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그 스승의 삶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삼아 그가 보여주시는 본을 그대로 본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모방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자신이 운영하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업을 들으라고 초청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살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 속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자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본받는 자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삶의 발자취를 그대로 모방하는 자,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 말씀을 보면 한편 바울이 대단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 바울이 좀 교만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자기 입으로 자기를 본받으라고 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고대인들의 도제식 교육을 알아야 합니다. 고대의 교육은 본래 스승을 그대로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평생 스승이신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배경 아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본받으려면 그 본을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본받은 바울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직접 본받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과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은 어떤 사람들을 본받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따르고 모방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본받으십시오. 또한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을 보고 그를 본받으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볼 때마다 늘 고민이 됩니다. 어떤 고민이 됩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자기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라는 직업을 버렸습니다. 이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도 세리라는 직업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 말씀을 볼 때마다 나도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선교사나 목회자 같은 전임사역자들이 부르심을 받고 직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간증하는 것을 보면 왠지 나는 참된 제자가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말씀을 그렇게 단순하게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사도가 된 후에도 천막 만드는 일을 계속 하였습니다. 바울의 평신도 동역자들은 제자가 된 후에도 자기 직업을 계속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직업을 버리느냐의 여부가 제자도의 핵심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자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려면 우선순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여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우선순위가 바뀐 자입니다. 이전에는 내 직업이 우선순위였다면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업을 버리고 헌신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직업을 계속 가지고 헌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여기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순위로 여기고 헌신한 사람은 직업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의 자리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직업을 버려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여러분의 일터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몇 주 전에 어느 목장에 방문했다가 목자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목자님은 친구의 아버님이 위독하여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님과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거의 한 달 동안 대전에서 분당까지 계속 오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계속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 친구의 가정을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찾아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던 아버님이 나중에는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또한 그 친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가 연결되어 그 교회로 친구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버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은 미리 연결된 가까운 교회에서 잘 치러 주었습니다. 결국 그 목자님은 아버님의 영혼을 구원하고 친구를 교회로 인도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남편과 아이가 있는 가정주부가 수도권에 있는 친구와 그 아버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한 달 가량 왕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목자님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결국 그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물론 때로는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고,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로 여기는 삶입니다.
내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직업을 버리고 전임사역자가 되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우선순위로 여기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의 삶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드린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온전히 자신의 삶을 드린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드린 바울의 동역자들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먼저 깊이 생각하십시오. 믿음으로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일평생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본을 따라 사십시오. 비록 처음에는 마치 병정놀이하는 것처럼,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어설프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예수님을 본받는 삶, 예수님을 모방하는 삶의 자리에 서십시오. 그것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한 걸음이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자리에서 계속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한 몸짓이라도 예수님을 모방하는 일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일평생 그렇게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